현상학회 선생님들께 올립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도 40일이 지났습니다. 모두 평안하신지요? 이미 예고해드린 대로 4월 세미나는 학술대회로 개최하고자합니다. 이번에 슈미트에 대한 현대철학자들의 논의를 주제로 택한 이유는, 법학계의 관심고조라는 객관적 분위기도 있지만, 슈미트에 대한 데리다, 아렌트, 아감벤, 하이데거의 범(汎)현상학적 접근과 이해 때문이라고도 하겠습니다. 게다가 딜타이와 신칸트학파를 비판하면서 현상학을 정초한 에드문트 후설이 근대 최고의 형이상학자라 경의를 표하고, 현상학을 인문사회과학으로 집대성하여 미증유의 사유로 전환시킨 메를로퐁티가 ‘원조 현상학자’로 간주한 17세기의 말브랑슈를 칼 슈미트가 이해하고 있었다는 배경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주제 선택의 두 번째 이유는, 슈미트가 나치의 이념적 기초를 세우고 부역한 심각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현대 정치의 양대 가치인 진보와 보수 두 진영에서 논의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현상학은 심리학과 존재론을 중심으로 연구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상학의 응용이라고 해봤자 심리치료나 정신분석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정치사회적 관심은 미미했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상학이 ‘운동’이라고 배웠고 또 그런 연유로 말브랑슈도 ‘세계는 미완성’이라 말했으리라 봅니다. 이제 현상학은 심리학, 존재론에 머물지 않고 예술과 정치라는 실천영역으로 저 미완성의 능력을 펼쳐 보여야하며 또 이미 그러한 광역 현상학자가 있었음을 여러분도 짐작하시리라 사료됩니다. 응용현상학의 적용을 개인의 차원에서 공동체의 차원으로 확대시켜, 상담에 국한된 한계를 넘어 국가시스템과 세계질서라는 대승적 범주로 옮길 때가 되었음을 공감하면서 4월 28일의 진리현장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현상학회 춘계학술대회
주제: 칼 슈미트에 대한 비판적 탐구, 정치현상학
일시: 2018년 4월 28일(토) 1시 장소: 성균관대 퇴계인문관 31308
사 회: 하제원 교수(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 개회사: 신인섭 교수(현상학회 회장) 축 사: 김도균 교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발표 1: 표광민 박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위촉연구원)
- 슈미트의 주권중심 정치에서 아렌트의 대화중심 정치로
발표 2: 진태원 교수(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 슈미트와 데리다, 주권의 해체
발표 3: 김 항 교수(연세대 국학연구원)
? 내전을 둘러싼 내전, 슈미트와 아감벤의 리바이어던 독해
발표 4: 신충식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 슈미트와 하이데거로 본 새로운 정치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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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문 소개】
표광민
냉전종식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질서는 전세계적 보편가치로 여겨졌으나 테러와의 전쟁, 금융위기 등으로 인해 한계를 노정하게 되었다. 칼 슈미트와 한나 아렌트 철학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데올로기가 추구하는 세계보편성에 대한 의문의 제기이며, 정치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제한된 공간성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정치학은 이 정치적 공간을 구성하는 원리를 각각 주권과 대화로 제시하며, 정치와 인간공동체의 본질을 서로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표광민 선생님은 이번 발표에서 슈미트와 아렌트가 말하는 정치의 공간성 및 여기서부터 다르게 전개되는 주권정치와 대화정치를 대별하며, 정치에 필수적인 폭력요소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본질은 결국 대화일 수밖에 없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진태원
진태원 선생님은 주권의 문제를 중심으로 슈미트와 데리다의 관계를 살피려합니다. 주권문제는 근대 정치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도 첨예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탄핵 이후 탄생한 문재인 정권은 ‘국민주권의 시대’를 열겠다고 했는데 이는 더 이상 통치자에게 복종만하는 피통치자로서의 수동적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이자 정치의 주체로서 국민주권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2017년 한반도를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었던 북한과 미국의 통치자 사이의 거친 말싸움을 보았을 때 과연 우리에게도 온전한 의미의 주권이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긴 것도 사실이라고 합니다. 진정한 주권 시대의 선언과 교차하는 주권 부재에 대한 확인, 도대체 이것은 우리나라에 고유한 역설적 상황일까요 아니면 좀 더 일반적인 철학적 함의를 지닌 것일까요? 그리고 이것이 현대 정치와 관련하여 함의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슈미트에 대한 데리다의 탈구축적 독서 및 주권의 분석을 따라 읽으면서 제기된 문제들을 진태원 선생님과 함께 살피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김항
김항 선생님은 조르주 아감벤이 최근의 저서 『내전』에서 슈미트의 “리바이어던론”을 비판하면서 토마스 홉스를 메시아니즘의 계보 속에 위치시킨 점에 주목하고 이번 발표를 통해 이들 두 사람의 ‘홉스’론을 대질시켜 '정치신학'의 쟁점들을 음미하며 부각시키고자 합니다. 아감벤의 슈미트 비판은 리바이어던 표상에 역사적으로 내장된 신학적 맥락을 지웠다는 데에 집중됩니다. 즉 슈미트가 의도적으로 탈무드의 리바이어던 해석을 왜곡하여 반유대주의를 표명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홉스의 국가를 종말을 지연시키는 카테콘으로 해석했다는 점도 아감벤은 비판의 중심으로 삼습니다.
신충식
해방 이후 한국인이 대체로 공유한 ‘정치경험’은 ‘되돌릴 수 없는 분열’이라는 비극적 경험이다. 차제에 우리 민족이 정치적으로 겪어온 반목, 대립, 적대의 경험을 현상학적으로 정식화해볼 필요와 의무가 있다. 이번 발표는 위기의 바이마르 공화국과 그 후 히틀러 체제를 몸소 경험했고, 당시 “가장 중요한 인물이자 가장 중요한 지식인인 철학자 하이데거와 헌법학자 슈미트”(E. Juenger)를 중심으로 우리 시대의 대립항, 예컨대, 상하(헤겔), 내외(슈미트), 생사(아렌트), 좌우(마르크스), 동서(정치지형)를 존재론적으로 정식화해 정치현상학의 범주에서 비판적 담론가능성을 타진해보는 것이다. 일찍이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친구와 적의 대립국면을 통해서 정의하고자 했다. 절친한 동시대인 하이데거 역시 자신의 실천철학을 존재론적 근거와 탈근거, 전유(Ereignis)와 탈전유(Enteignis), 현전과 부재라는 양립 불가능하고 이중구속적인 두 항을 통해 논의하고자 했다. 궁극적으로 존재물음(pelein)과 정치물음(polis)이 “모임”(legein)이라는 한 뿌리에서 출발한다면 ‘정치현상’은 국가라기보다는 “구체적 모임”이다. 신충식 선생님의 발표는 한국의 오랜 정치적 대립국면에 대한 비판적인 정치문법의 틀을 밝히는 시도라 하겠다. |
【회원 출간】
한상연, 『공감의 존재론』, 세창미디어, 2018
현상학회 학술이사이신 한상연 선생님이 올해 초 간행한 『공감의 존재론』은 하이데거, 사르트르, 슐라이어마허의 철학을 바탕으로 공감의 존재론적 의미를 밝히는 책이다. 철학상담과 심리학 등 여러 학문영역에서 공감이 아주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음에도, 그 철학적 의미에 관한 엄밀한 분석과 해명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더욱이 존재론적 관점에서 다루는 저술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무한 상황에서 나온 『공감의 존재론』은 엄밀한 철학적 사유의 근거를 마련해주고 있는데 특별히 막스 셸러의 공감 개념에 대한 주해와 더불어 sympathy로 번역할지 empathy로 번역할지에 대해 존재론적인 분석을 시도한 부분은 20세기의 다른 현상학자들과의 비교연구를 촉발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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