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름,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가 올린 홍보물이 공공의대·지방·한의학을 비하하며 여성혐오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폐암 말기로 당장 치료제가 필요한 생명이 위독한 A씨. 생리통 한약을 지어 먹으려는 B씨. 둘 중 건강보험 적용은 누구에게 되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선택지를 고르게 하는 문항도 있었다. 이에 여성혐오라는 여론이 들끓었고, 연구소 측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에 관한 특별한 의도”는 없으며, “한방 급여화”를 비판하고 “한방이 과학적·의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얘기를 하려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과학적·의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한의학. 이것은 한의학계와 대립각을 세우는 대한의사협회의 특수한 입장은 아니다.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한의학은 과학인가’라는 해묵은 논쟁은 끊이지 않고, 한의학은 비과학적이며 정체되어 있다며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편, 한의학과 전통의학을 현대 의학의 대안으로 여기거나 신비화하는 흐름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양극단을 벗어나면, 한의학은 우리의 일상과 의료 경험을 구성하는 익숙한 풍경이다. 동네마다 병원 옆에 한의원이 있고, 한약을 먹고 침 치료를 받으러 한의원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병원에서 고치지 못하는 병을 한의학의 도움을 받아 나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럼에도 한의학은 여전히 오해와 편견에 휩싸여 있으며, 『동의보감』 같은 고서의 이미지, 또는 ‘음양오행’, ‘기’ 같은 말에 둘러싸여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
이와 같이 한의학에 대한 세간의 이해가 척박한 현실에서, 경희대 한의과대학 김태우 교수가 한의학을 새롭게 조명하는 『한의원의 인류학』을 펴냈다. 의료인류학을 공부한 저자는 한의학 내부의 논리와 동학을 인류학과 철학의 언어로 ‘번역’해 들려준다. 한의학이 서양의학과 어떤 차이가 있고 그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지 15년 동안 한의원과 병원을 오가며 쌓아온 생생한 현장 연구를 바탕으로, 두 의료를 성립시키는 사유의 근본, 즉 존재론과 인식론의 문제를 파고든다. 인류학자의 눈에 비친 진료실 풍경, 의료인과 환자가 주고받는 생생한 대화가 의료를 둘러싼 철학적 논의에 활력을 부여한다. 이 책은, 한의학의 원리가 궁금했던 이들에게는 오래된 지적 갈증을 해소해줄 경험이, 한의학을 불신했던 이들에게는 그간의 선입견을 무너뜨릴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