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시간』이 출간된 1927년, 무명이었던 하이데거는 한순간에 위대한 철학자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 저서가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하이데거가 ‘기초존재론’이라는 전통존재론적 사유와는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독창적인 존재사유를 개진했기 때문이다. 존재란 무엇인가, 하이데거는 허무주의와 전쟁의 대혼란 속에서 고대 그리스의 존재론 이후 서양 형이상학에서 망각되어 온 질문을 다시금 건져 올린다. 그의 존재물음은 인간으로서의 존재양식에 대한 사유로 이어지고, 오직 인간만이 시대적 조건과 의미의 총체인 ‘세계’를 가지며, 인간이란 언제나 일정한 관계망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데 이른다. 이 책은 하이데거의 세계를 사회적 세계로 보는 ‘사회존재론’에 입각해 존재사유를 고찰하고자 한다.
그동안 하이데거의 존재사유를 이해하기 위한 실존주의, 해체주의, 현상학, 해석학 그리고 불교 철학까지 많은 방법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등장한 사회존재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이데거의 존재사유를 정복하기 위한 수많은 길들이 있지만, 여전히 기초존재론의 가장 핵심 개념인 현존재와 실존 그리고 세계의 의미가 아직도 불분명하게 남아 있으며, 이로 인해 전체적인 윤곽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것이 이 책을 통해 사회존재론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오직 이 길에서만 기초존재론에서 제시되는 여러 개념들을 일관성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21세기, 실재하는 공간을 초월한 SNS라는 조밀한 관계망 속에 존재하면서도 되레 ‘존재’에 대한 사유를 망각한 채 살아가는 우리로 하여금 현대사회의 개인주의에 침잠해가는 자신과 자신을 이루는 세계에 대해 사유할 기회를 제공한다.
사회존재론의 두 가지 쟁점『존재와 시간』에서 확립된 현존재분석과 존재사유의 의의를 사회존재론에 입각해 해석하고자 하는 이 탐구는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첫째, 기초존재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인 ‘실존’ 또는 ‘실존범주’의 의미를 인간의 존재방식에만 국한하지 않고 인간의 존재방식이 토대로 삼고 있는 사회적 세계와 연관 지어 밝히고자 한다. ‘실존범주’를 자연세계에 대비되는 사회적 세계 속에 존재하는 현존재의 존재방식, 즉 타자와 공존하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실존’에서 유래되는 사유 방식으로 파악할 때, ‘실존’은 단순하게 인간의 존재방식이 아니라 인간이 사회적 세계에 처해 있는(befindlich) 존재방식 그리고 이 세계에 필연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정황적’(befindlich) 사유와 ‘정황적 자유’의 토대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 ‘실존’과 ‘실존범주’는 인간이 거주하는 사회세계의 존재론적 근거를 밝히는 사유로 이해되기 때문에 인간 실존에만 초점을 맞추는 인간학적 해석과는 차별화된다.
둘째, 사회존재론을 강조함으로써 하이데거가 확립하고자 한 새로운 존재사유가 이론적 이성에 기초한 자연과학의 발전에 의해 주변부로 밀려나게 된 정신과학 또는 사회철학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 주고자 한다. 즉, 기초존재론이 사회존재론으로 이해되었을 때, 우리는 20세기 초 독일에서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한 사회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하이데거가 자신의 존재사유에서 자연과학의 가능조건이 아니라 사회(정신)과학의 가능조건을 존재론적으로 확립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하이데거의 존재사유를 사회존재론뿐만 아니라 철학의 전반적인 흐름에 비추어 살펴보고자 한다. 1부에서는 하이데거 사회존재론의 전제를 형성하는 주요 철학사상들을 다룬다. 막스 셸러의 지식사회학, 실용주의, 쇼펜하우어의 의지 철학, 딜타이의 정신과학 그리고 헤겔의 정신 개념을 심도 있게 분석함으로써 우리는 사회존재론으로 해석될 수 있는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이 후설 현상학에서만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다른 철학적 문맥도 전제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2부에서는 현존재분석을 구성하는 핵심 개념들을 사회존재론적 관점에 입각해 해명할 것이다. 특히 현존재를 규정하는 ‘세계-내-존재’에서의 세계를 사회적 세계로 해석하고 주위세계의 사물, 즉 도구를 최초로 만나는 현존재의 실천적 행위가 사회적 세계를 건축하는 노동과 행위에서 유래됨을 보여 주고자 한다. 이뿐만 아니라 현존재의 자기를 사회적 세계에서 타자와 함께 존재하는 자기로 해석함으로써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solus ipse)에서 하이데거가 추구하는 것은 고립된 원자의 방식으로 존재하면서 모든 것을 자기 안으로 귀속시키는 자율적인 근대적 주체의 철학으로 다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서로 대립되어 있지 않고 타자와 연대성(solum)을 이루는 진정한 사회적 세계를 구축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데 있음을 보여 주고자 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철학적 관점들로 ‘존재’를 정교하게 사유하고, 존재를 규정하는 사회라는 세계의 형성 과정 속 존재 간의 연대를 고찰함으로써 현대사회 속 존재로서의 의의를 조명해 볼 수 있을 것이다.